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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개소개

진도개는 다른 개와 달리 여러 가지 우수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이러한 특성 때문에 일제하인 1938년 조선명승고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다가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다시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도개는 옛날 석기시대의 사람이 기르던 개의 후예가 전해 내려온 한반도의 토종견으로 진도라는 섬의 특수한 지리적, 문화적 환경에 수세기 동안 적응하면서 고유의 품종으로 유지, 정착되어 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견이다.
진도개는 중형견으로 주인에게 충직하고 영민하며 주변을 청결히 하고 귀소성이 뛰어나며 수렵본능과 용맹성이 탁월하다.
연못 옆을 지나가는 진도개 5마리
진도개의 기원에 관한 문헌은 1940년 대에 일본인에 의하여 기술된 것과 최근에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하여 쓰여진 것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 일본 모리교수는 출토된 개의 유골을 비교해본 결과 진도개는 옛날 석기시대 사람들이 기르던 개의 후예가 전해 내려온 것이며, 진도는 섬이라는 특수성과 교통이 불편하여 다른 개의 유입이 적어 순수한 원형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진도개 백구 황구
이와 관련하여 이상오(수렵비화, 1971년)는 서기전 중국 대륙에서 들여온 개들이 토착화하여 한국의 고유견이 되었으며, 그 중 가장 뛰어난 품성을 지닌 것이 전라남도의 진도개와 함경남도의 풍산개라고 주장하여 상기 모리교수 등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진도에는 진도개의 기원과 관련된 몇가지의 설이 구전되어 오고 있는데, 그 하나는 송나라 표류견설로 중국의 송나라(서기960~1270년)와 고려사이의 교역이 활발했던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 진도 옆을 지나던 송나라의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하고 그 배에 실렸던 개가 진도에 건너와 진도개의 선조가 되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몽고견의 설로 서기 1270년~1273년 삼별초 군을 토벌한 몽고군이 진도 주민을 자기 나라로 데려가 노예로 삼았다가 3년뒤에 돌려 보냈는데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개를 가져와 기르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진도개라는 것이다.
위와 같이 두가지의 전설 이외도 박종만(진도개에 관한 연구,1971년)은 조선초기에 진도군 지산면에 군마 육성 목장이 설치되었고, 그 목장에서 번견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몽고에서 들여온 개가 진도개의 원종이라는 설로 소개하였고, 임병철(한국의 진도개,1985년)은 우리나라 토종개가 진도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여 생겨난 것이 진도개라는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의 역사에 눈을 돌려보면 인덕천왕43년(5세기초)에 기인한 새 즉, 매를 잡아 길들인 다음 처음으로 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양응기(매를 기른 기록)에 그보다 3년 뒤에 우리나라 백제의 사냥개가 매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사실이 적혀 있다. 그 일부를 우리말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인덕천왕은 46년(5세기초) 백제의 사자가 매와 개를 현물로 우리나라에 가져 왔다. 바다를 건너온 배가 월주 돈하진에 도착했는데 매를 길들이는 사람의 이름이 마광이었고, 개를 길들이는 사람은 수광이었다. 이 때 가져온 개는 검은 얼룩박이였다. 왕의 명령에 따라 돈하진에 가서 백제의 사자를 영접하였다. 이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매를 부리는 일이 서툴러서 마광을 모시고 그 방법을 모두 배워서 익힌 다음 마침내 매가 사람의 어깨위에서 개를 인도하여 사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물 넘는 진도개
진도개 사진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으나, 이상오(수렵비화 1971년)는 다수의 사냥개가 백제의 성왕때(서기 523~553년)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저들의 기록인 양응기에 나타난 것보다 약 100년 후의 일이라 하겠다. 그 밖에도 우리나라의 개가 일본으로 건너간 사실을 일본인들의 기록인 일본서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천무천왕 8년인 서기 679년과 동 14년인 서기 685년에 각강 신라의 조(調)로서 말이나 노새와 함께 개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진도개를 포함한 우리나라 개와 일본개를 대상으로 한 혈청학적 및 생물학적인 연구의 결과 지금으로부터 1,300년~2,500년전에 우리나라의 개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학적인 결과에 사실을 맞추어 보면, 우리나라 개가 약 1,500년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분명해지게 된다.

개는 사냥을 위하여 가장 먼저 가축화 된 짐승인데 요즘에는 용도에 따라 집지키는 개, 목장개, 사냥개 또는 군견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특성들을 분명하게 나누어진 것은 아니다. 진도개는 여러가지 우수한 품성을 지녔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충직성과 복종심을 비롯 용맹성과 수렵성이 뛰어나서 선천적인 사냥개라고도 한다. 이러한 우수한 특성은 자연과의 접촉에서 획득되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며 육지의 개와는 달리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진도에 있던 개는 순수한 혈통과 야성이 그대로 유지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특히 뛰어난 수렵성은 먹이가 열악한 조건에서 생존을 위한 본능에 형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거나 일본인의 기록으로 봐서도 석기시대의 사람들이 기르던 개가 중국 대륙에서 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왔으며, 그 중 일부가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돌 위에 앉아있는 진도개 새끼 6마리
진도개 사진위에 열거한 사실이나 과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백제나 신라에서 일본으로 개가 건너간 것은 중국의 송대난 삼별초 난 보다 훨씬 앞서의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개가 일본으로 건너간 5~6세기에 우리나라에 퍼져 있던 개는 주로 사냥에 이용되었을 것이며, 그 중에 사냥에 뛰어난 것들을 일본에 보냈으리라 짐작 하기는 어렵지 않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5~6세기경 우리나라에 퍼져있던 개는 주로 사냥에 이용 되었으며, 육지개와는 달리 진도에 있던 개들은 그 혈통이나 야성이 비교적 순수하게 유지되어 오늘의 진도개가 되었고, 그 때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가 형질을 오늘날까지 유지함으로써 언뜻 보아서는 진도개와 구별하기가 어려운 현재의 秋田犬,紀州犬 등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인용한 양응기에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개는 검은 얼룩박이였다. 그러나 모색을 가진 개는 1973년 모리교수가 본 진도개의 모색중 흑색이나 황갈색 바탕에 흑색을 띤 소위 호반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수가 많지는 않으나, 요즘에는 진도개 중에는 그와 같은 색깔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진도개는 송나라 개나 몽고견의 후예가 아니라 석기시대의 사람들이 기르던 개의 후예가 진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혈통과 야성을 비교적 순수하게 유지하면서 토착화한 우리나라의 고유견이다. 이와 유사한 견해로 일본견의 선조를 논하는 논문에서 유사이전의 가견이 유사이후의 다소 다른 개의 영향을 받아 고정된 것이 오늘의 일본견이며 일본각지의 지방의 특성을 띠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결론 지었다.
지금까지 수집된 여러가지 문헌과 수행된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진도개의 기원을 고찰했다. 속설로 구전되어 오는 몽고견이나 송나라 표류견 설은 근거가 매우 애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진도개는 석기시대의 사람들이 기르던 개의 후예가 진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혈통과 야성이 순수하게 유지되어온 우리나라의 고유 토종개임이 분명하게 입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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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17-06-28 18:01